종교란 무엇인가 / 최준식 2. 이른바 종교를 정의하는 문제 4) 다양하고 다양한 인류의 종교 현상
종교란 무엇인가 / 최준식 2. 이른바 종교를 정의하는 문제 4) 다양하고 다양한 인류의 종교 현상 이와 같이 서양의 유대-기독교적인 관점을 가지고 종교에 대해 접근하면 지구상에 있는 수없이 다양한 종교들을 모두 포괄해서 정의 내리는 일이 심히 어려워진다. 우리는 위에서 동북아 종교에 대해서만 살펴보았지만 전 세계에 걸쳐 널려있는 종교 혹은 종교적 현상들을 보면 종교를 싸잡아서 한 마디로 정의 내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가령 멜라네시아의 어떤 부족이 개구리를 숭배하는 종교 행위와 미국 보스턴에서 융성하고 있는 기독과학교(Christian Science)와 무슨 관계가 있을 것이며 지금도 인도의 설산 속에서 수행하는 도인들과 강증산을 하느님으로 신봉하는 한국의 증산교도들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할까? 그러나 이런 현상들은 모두 전형적인 종교 현상이니 이것을 포괄해서 종교를 정의 내리는 일이 필요하다. 종교를 정의하는 문제가 복잡하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이렇게 여러 종교를 섭렵할 필요도 없다. 힌두교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힌두교는 서양의 좁은 유신론적 체제로는 도저히 잡히지 않는 종교이다. 힌두교 안에는 수많은 종교적 견해들이 병존하기 때문이다. 가령 모든 사물에 신이 깃들여 있다는 범신론부터 시작해서 그 신이 내재하면서 동시에 초월해 있다는 범재신론으로 해서 다신론, 일신론, 유일신론, 이원론, 일원론 등등 일련의 주장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럼 힌두교를 유일신론을 지향하는 서구적인 의미에서 종교라 할 수 있을까 없을까? 그런가 하면 종교에 꼭 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요소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느냐와 같은 문제도 명확하게 대답하기가 힘들다. 가령 초기 불교 같은 경우를 보면 인간의 본성을 넘어선 어떤 실체도 인정하지 않는데 그렇다고 초기 불교를 종교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게다가 붓다는 윤회와 같은 초지각적인 사건에 대해서 언급을 회피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울러 공(空)과 같은 초이론적인 교리도 아직 나오기 전이다. 그래서 불교를 놓고 종교라 하지 않고 철학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불교가 칸트 철학과 같은 순전한 철학에 그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철학에는 구원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종교와는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유교에도 어느 정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공자도 초자연적인 것을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숨겨진(covert) 종교 혹은 준(準, quasi) 종교라 불리는 마르크시즘이나 나치즘, 더 나아가서 김일성주의 혹은 키미즘(Kimism)에도 적용된다. 혹자는 이런 이데올로기가 종교와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 이즘들은 가장 종교를 반대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그 내부 구조는 종교를 쏙 빼어닮았다는 의미에서 준 종교라 하는 것이다. 이 이즘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선 교조에 대한 강한 숭배열을 들 수 있다. 과거 특정한 인류들은 이 정치 지도자들을 향해 인간의 도를 넘는 숭배를 보였다. 그 가운데에서도 북한인들의 김일성 숭배열은 아마 다른 도전자들을 일치감치 따돌렸을 것 같다. 과거에 독일 TV에서 우리나라의 종교에 대해 찍으러 왔을 때 무당의 굿하는 모습과 개신교의 부흥회 하는 모습, 그리고 김일성에게 열광하는 모습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고 찍었다는 것은 사실 여부를 떠나서 대단히 재미있는 사실로 생각된다. 서양인들에게는―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지만―김일성에게 열광하는 모습이 무당이 굿할 때 신명내는 것이나 부흥회 때 망아경 속으로 빠져들어 방언을 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게 보인 모양이다. 그 다음 공통점은 자신만이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데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을 들 수 있다. 이른바 정통성에 대한 집착이다. 가령 마르크시즘을 신봉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이 마르크스주의야말로 유일한 진리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유대-기독 전통에서 자신들의 종교만이 유일한 진리로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정통에 대한 집착은 강한 교조주의 혹은 강한 도그마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정통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보니까 자신들의 체제를 배신한 사람들에게는 무자비한 압박이 가해진다. 공산주의나 전체주의 국가에서 반체제 인사들을 어떻게 처리했는가 하는 것은 다시 거론할 거리도 못된다. 한 마디로 무자비한 숙청만이 있을 뿐이다. 스탈린이나 히틀러, 김일성 정권에서 정치적으로 의견을 달리 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대했는가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유일신론을 주장하는 종교들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진 것으로 보이는데 과거에 유대-기독 전통과 같은 종교에서는 배교 자체를 인정하지도 않았지만, 그런 중에서 아주 드물게 배교자들이 생겨나면 이들을 아주 잔인하게 처단했다. 사실 이데올로기와 종교의 공통점은 이런 정치적인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교조를 둘러싼 신화들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가령 기독교에서 모세가 홍해를 갈랐다느니 예수가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오천 명을 먹여 살렸다느니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신화 만들기 작업은 이데올로기 체제 안에서도 매우 흡사하게 일어난다. 특히 종교 체제와 가장 많이 닮은 ‘김일성교’―북한인들은 기독교인들이 신을 아버지로 부르듯이 김일성을 아버지로 불렀다!―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북한인들은 김일성을 하나의 개인이 아니라 거의 신에 가까운 존재로 파악했다. 이것은 그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종교의 교주에게서나 적용될 수 있는 신화가 형성되어 있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가령 김일성이 나뭇잎 하나를 의지해 압록강을 건넜을 뿐만 아니라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어 일본군과 싸웠다는 일화는 거의 종교에서 말하는 신화처럼 들린다. 나뭇잎 하나를 타고 강을 건넜다는 신화는 불교도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신화 아닌가? 선불교의 초조로 간주되는 달마가 양자강을 건널 때 같은 일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은 달마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시아 전반에서 발견되는 신화이기도 하다. 김일성에 대한 신화는 그가 죽고 난 다음에 절정을 이룬다. 북한인들은 세뇌가 되었든 아니든 김일성이 죽지 않고 살아서 아직도 그들을 통치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이른바 유훈통치이다. 이런 믿음을 극대화하기 위해 북한 당국은 TV로 달을 비추면서 달에 나타나는 음영이 바로 김일성 주석이 움직이는 모습이라고 선전했다. 사태가 이 정도가 되면 이것은 ‘새빨간 거짓이다, 아니다’의 차원을 넘어서 신화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북한인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까마득한 고대에 있었던 영웅에 대한 신화로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영웅은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원형이 되어 북한인들의 마음 속에 살아 있다. 이것은 마치 예수가 죽은 뒤 부활해 제자들에게 죽음을 극복했다는 확신을 준 뒤 다시 승천해 성령으로 영원히 같이 있다는 기독교의 영원한 신화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보면 이데올로기와 종교들이 얼마나 서로 닮았는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이데올로기를 숨겨진 종교라 하는 것이다. 북한은 인류 역사상 종교를 가장 억압한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실상은 그 반대로 가장 종교적인 나라가 되어버렸다. 가장 반종교 국가처럼 보이는 북한이 사실은 종교 국가로 보이는 것은 김일성주의(그리고 주체철학)를 종교에서 말하는 도그마적인 교리의 수준으로 올려놓고 종교에서 요구하는 것과 거의 같은 일을 행해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가장 반종교 국가로 시작한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종교적인 국가로 변신하는 아이러니 현상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인류에게는 종교가 없었던 시기가 없다는 설이 설득력을 가진다. 종교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인류는 죽음이라는 절체절명의 한계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유사 이래로 종교라는 사회 체제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인류라는 동물이 생겨났을 때부터 종교적 행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나중에 다시 자세하게 보게 되는데 실제로 인류사를 되돌아보면 종교가 없었던 시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굳이 반론을 내세운다면 지난 세기 초에 생겨나 아직도 몇 국가는 그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공산주의 체제 국가에는 적용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종교를 철저하게 억압했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앞에서 거론한 대로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가 종교 역할을 대신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 다시 인류사에서 종교가 없었던 시기는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