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
마음의 진화와 문화 / 박순영 1. 서론: 문화/생물학 이분법에 대한 문제 제기
필부
2007. 3. 21. 22:01
마음의 진화와 문화 / 박순영
1. 서론: 문화/생물학 이분법에 대한 문제 제기
인간의 사회적 삶을 이해하는 데 인간생물학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관점이 사회과학계에서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975년 에드워드 윌슨(E. O. Wilson)의 <사회생물학>(Sociobiology: The New Synthesis) 출간이 격렬한 논쟁을 촉발한 지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생물학적 패러다임이 재등장하고 있는 조짐이 있다(Segerstrale 2000 참조). 인간행동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에 대한 문화적 저항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은 인간 도덕성을 진화의 산물로 설명하는 대중과학 서적들이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출간되어 일반대중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도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학계 일반의 문화/생물학 이분법적 사고와 연구관행은 변화하지 않고 있다. 특히 주류 사회과학계는 평소에는 이 주제에 대해 무관심하지만 어떤 생물학적 논의라도 인간의 사회적 삶을 설명하는 데 침투하는 기미가 있으면 이를 결단코 용납하지 않을 태세로 일치 단결하는 듯이 보인다. 자신의 전문분야로 세분화된 자연과학자들도 이 문제로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각 분야의 학문적 업적은 서로 소통되지 않고 있으며 학계 일반에서는 인간행동의 생물학적 기반에 대한 어떤 논의도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딱지를 붙여 가볍게 처리해 버리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그 결과 선천/양육이라는 비생산적이고 비과학적인 이분법적인 사고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인간의 이해’라고 하는 큰 학문적 주제의식과 인간에 대한 총체적 접근이라는 방법론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인류학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문화인류학자들은 공유된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의 총체인 ‘문화’라는 개념을 가지고, 다양한 인류사회를 대상으로 그 학문적 목적을 추구해 왔다. 한편 생물인류학자들은 인류의 진화생물학적 측면을 연구함으로써 종으로서의 인류의 특성을 밝혀내어 인간성의 총체적 이해라고 하는 인류학의 학문적 목적에 접근해 왔다. 그러나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종합과학이라는, 외적으로 표방되고 있는 인류학의 궁극적인 학문적인 목적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문화적 측면을 연구하는 문화인류학과 생물학적 특성을 대상으로 하는 생물인류학은 학문적 교류나 공동의 관심영역을 가지지 않고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분리는 여러 제도적<인간적>이데올로기적 역사적 요인과 관련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적인 문제이며 궁극적으로는 문화/생물학 이분법과 관련되어 있다. 인간생물학과 인간문화를 아우르는 종합과학으로서의 인류학을 하려면 함께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지적 기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생물학과 인간문화의 관계에 대한 이론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인 문화인류학과 자연과학적 접근인 생물인류학이 학문적으로 생산적인 상호작용을 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면서 궁극적인 해결 과제가 바로 인간문화와 인간생물학의 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공통된 이해의 확립이다. 현재까지는 진화론만이 하나의 종(species)으로서의 인간 보편성을 상정하게 해주는 이론이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자들에게 진화는 인간이 문화적 능력(capacity for culture)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사실까지만 유효하다. 이러한 능력은 유연한 학습능력을 의미하는데, 인류의 진화선상에서 이러한 능력을 보유한 이후부터의 인간문화는 인간생물학으로부터 자율적이므로 인간생물학-인간문화 관계에 대한 설명은 아주 막연한 수준에서 관련이 있다는 애매한 언급에서 멈추게 된다. 물론 현대의 어떤 인류학자도 실제로 인간정신이 무한히 유연하다고 믿지는 않겠지만 마치 그러한 듯이 연구와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문화인류학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는 생물학적 논의가 인간의 문화적 행위에 대한 설명에 침범하는 것이다(예를 들면 Sahlins 1976). 물론 문화인류학자들 중에서도 생물학적 진화와 적응의 개념을 가지고 인간행동을 연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물론, 인간에 대한 종합과학으로서의 인류학은 진화한 종으로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보편성에서 출발할 수 있으며 여기에는 당연히 심리적 보편성도 포함된다. 다만 ‘진화한 인간 심리의 보편성’은 문화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백지와 같아서 무한히 또 모든 방향으로 동등하게 유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적 구조가 있고 풍부한 내용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종래 문화진화론자들이 상정했던 심리적 제일성(psychic unity of mankind)과 다르다. 이러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문화의 다양성은 무한하지도 않고 무작위적으로 발생하지도 않는다. 근래 서구에서 일단의 인류학자와 심리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진화심리학이라는 타이틀 아래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학문적 시도는 위와 같은 관점에서 인간보편성과 문화적 다양성의 관계에 대하여 탐구하고 논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서 도출된 ‘종 특이적(species-specific) 정보처리기제의 진화’와 같은 개념은 인간행동의 다양성이 조직되는 패턴을 설명해 낼 수 있는 막대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의 논리와 학문적 성과는 아직 일반에게는 생소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진화심리학에서 제기된 주장을 검토하여 인간행동에 대한 진화생물학적 접근과 사회문화적 연구가 통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알아보고자 한다. 이는 인간행동에 대한 진화생물학적 설명과 사회문화적 설명이 적어도 상호모순 없이 양립할 수 있는지, 더 나아가 두 가지 접근법의 통합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심화될 수 있는지를 모색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즉 진화적 가설을 포괄함으로써 인간 현상에 대한 설명이 더 충실하고 일관성이 있어 질 가능성을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
1. 서론: 문화/생물학 이분법에 대한 문제 제기
인간의 사회적 삶을 이해하는 데 인간생물학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관점이 사회과학계에서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975년 에드워드 윌슨(E. O. Wilson)의 <사회생물학>(Sociobiology: The New Synthesis) 출간이 격렬한 논쟁을 촉발한 지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생물학적 패러다임이 재등장하고 있는 조짐이 있다(Segerstrale 2000 참조). 인간행동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에 대한 문화적 저항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은 인간 도덕성을 진화의 산물로 설명하는 대중과학 서적들이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출간되어 일반대중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도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학계 일반의 문화/생물학 이분법적 사고와 연구관행은 변화하지 않고 있다. 특히 주류 사회과학계는 평소에는 이 주제에 대해 무관심하지만 어떤 생물학적 논의라도 인간의 사회적 삶을 설명하는 데 침투하는 기미가 있으면 이를 결단코 용납하지 않을 태세로 일치 단결하는 듯이 보인다. 자신의 전문분야로 세분화된 자연과학자들도 이 문제로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각 분야의 학문적 업적은 서로 소통되지 않고 있으며 학계 일반에서는 인간행동의 생물학적 기반에 대한 어떤 논의도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딱지를 붙여 가볍게 처리해 버리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그 결과 선천/양육이라는 비생산적이고 비과학적인 이분법적인 사고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인간의 이해’라고 하는 큰 학문적 주제의식과 인간에 대한 총체적 접근이라는 방법론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인류학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문화인류학자들은 공유된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의 총체인 ‘문화’라는 개념을 가지고, 다양한 인류사회를 대상으로 그 학문적 목적을 추구해 왔다. 한편 생물인류학자들은 인류의 진화생물학적 측면을 연구함으로써 종으로서의 인류의 특성을 밝혀내어 인간성의 총체적 이해라고 하는 인류학의 학문적 목적에 접근해 왔다. 그러나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종합과학이라는, 외적으로 표방되고 있는 인류학의 궁극적인 학문적인 목적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문화적 측면을 연구하는 문화인류학과 생물학적 특성을 대상으로 하는 생물인류학은 학문적 교류나 공동의 관심영역을 가지지 않고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분리는 여러 제도적<인간적>이데올로기적 역사적 요인과 관련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적인 문제이며 궁극적으로는 문화/생물학 이분법과 관련되어 있다. 인간생물학과 인간문화를 아우르는 종합과학으로서의 인류학을 하려면 함께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지적 기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생물학과 인간문화의 관계에 대한 이론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인 문화인류학과 자연과학적 접근인 생물인류학이 학문적으로 생산적인 상호작용을 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면서 궁극적인 해결 과제가 바로 인간문화와 인간생물학의 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공통된 이해의 확립이다. 현재까지는 진화론만이 하나의 종(species)으로서의 인간 보편성을 상정하게 해주는 이론이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자들에게 진화는 인간이 문화적 능력(capacity for culture)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사실까지만 유효하다. 이러한 능력은 유연한 학습능력을 의미하는데, 인류의 진화선상에서 이러한 능력을 보유한 이후부터의 인간문화는 인간생물학으로부터 자율적이므로 인간생물학-인간문화 관계에 대한 설명은 아주 막연한 수준에서 관련이 있다는 애매한 언급에서 멈추게 된다. 물론 현대의 어떤 인류학자도 실제로 인간정신이 무한히 유연하다고 믿지는 않겠지만 마치 그러한 듯이 연구와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문화인류학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는 생물학적 논의가 인간의 문화적 행위에 대한 설명에 침범하는 것이다(예를 들면 Sahlins 1976). 물론 문화인류학자들 중에서도 생물학적 진화와 적응의 개념을 가지고 인간행동을 연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물론, 인간에 대한 종합과학으로서의 인류학은 진화한 종으로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보편성에서 출발할 수 있으며 여기에는 당연히 심리적 보편성도 포함된다. 다만 ‘진화한 인간 심리의 보편성’은 문화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백지와 같아서 무한히 또 모든 방향으로 동등하게 유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적 구조가 있고 풍부한 내용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종래 문화진화론자들이 상정했던 심리적 제일성(psychic unity of mankind)과 다르다. 이러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문화의 다양성은 무한하지도 않고 무작위적으로 발생하지도 않는다. 근래 서구에서 일단의 인류학자와 심리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진화심리학이라는 타이틀 아래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학문적 시도는 위와 같은 관점에서 인간보편성과 문화적 다양성의 관계에 대하여 탐구하고 논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서 도출된 ‘종 특이적(species-specific) 정보처리기제의 진화’와 같은 개념은 인간행동의 다양성이 조직되는 패턴을 설명해 낼 수 있는 막대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의 논리와 학문적 성과는 아직 일반에게는 생소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진화심리학에서 제기된 주장을 검토하여 인간행동에 대한 진화생물학적 접근과 사회문화적 연구가 통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알아보고자 한다. 이는 인간행동에 대한 진화생물학적 설명과 사회문화적 설명이 적어도 상호모순 없이 양립할 수 있는지, 더 나아가 두 가지 접근법의 통합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심화될 수 있는지를 모색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즉 진화적 가설을 포괄함으로써 인간 현상에 대한 설명이 더 충실하고 일관성이 있어 질 가능성을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