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부
2007. 1. 7. 12:21
겨울안개로 눈이 감긴 밤이다.
가로등 불빛은 안개를 더듬고
정적이 어둠과 같이 안개를 뒤덮고 있다.
손을 저어 안개를 헤치는 가로등아래 가로수가 고독하게 밤을 지킨다.
창가에 서서 안개 속으로 걸어가는 나를 본다.
평소 즐겨입는 검정 신사복을 입고 뚜벅뚜벅 걷는 뒷모습이 허전해 보인다.
옷장에 넣어둔 베이지색 바바리 코트를 꺼내 걸쳐주고 싶다.
안개에 젖어 감기라도 걸린다면 더욱 우울한 밤이 될까 걱정이다.
내 신체에서 떠나 밤길을 걷는 의식속의 나를 보며, 미로를 생각한다.
인생이란 표적지를 잃고 여유로운 척 태연하게 걷는 미로속 산책은 아닐련지.
근심하는 무거운 얼굴이 남의 눈에 띄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열등감.
달관이라도 한듯이 관조라는 연기를 능숙하게 하며
자족으로 배부른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기만은 아닌지.
그래서 이성이라는 의식으로 잠재해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욕구를 잠재우며 사는지 모르겠다.
겨울이다.
그리고 밤이다.
안개가 짙어 다른 사람이 나를 볼 수 없다.
나 또한 또 다른 나인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쓸 이유도 없다.
그래서 마음을 놓고 나라는 허울을 벗고 또 다른 내가 외출을 한다.
지성이나 가치, 윤리법칙도 가소롭게 털어내고 화려하게 외출을 하는 밤이다.
자아라는 나를 내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고하게 한다.
나라는 존재는 지식이라는 관념과 경험이라는 습관에 얼마나 오염이 되었던가.
지극히 허술하고 나약한 나라는 자아를 자유롭게 목욕시키는 밤이다.
겨울 안개로 세심(洗心)을 하는 밤이다.
아! 어디까지가 인생인가.
2003.02.09 22:32
첨언.
짬이나면 지난 낙서를 들추어보는 게 잔재미가 되었다.
얼마나 나는 내 자신만을 사랑했던가.
얼마나 나다운 나를 열망했던가.
그렇기에 나라는 자아에 대해 너무도 쓸쓸해 했고
마땅치 않는 내 자신을 얼마나 차갑게 나무랐던가.
사랑이 증오이고 기대가 실망인것을.......
사랑하는 그대여.
간곡히 부탁드리노니 사랑은 지켜보고,
지켜보며
마음에 몇 겹으로 겹쳐 그리는 그림이라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아주소서.
흐르는 곡은 Orange Road -Daveed 입니다.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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