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바닷가 찻집 / 김승봉

필부 2006. 12. 29. 09:26

바닷가 찻집 / 김승봉 누구나 바다 하나씩 가지고 산다 가까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 <귀머거리> 찻집에 앉아 옛사랑을 그리며 반쯤 식어버린 차를 마신다 파도는 유리창너머에서 뒤척거리고 주인은 카운터에 앉아 오래된 시집을 읽고 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찻집보다는 선술집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사내들이 와르르 몰려든다 주인은 시집을 덮고, 바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확트인 유리창 곁에 그 사내들의 자리를 권하고 다시 시집을 펼쳐든다 벽난로에는 장작이 타들어간다 주인은 주문을 받지도않고 사내들은 주문을 하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사내들은 떠나가고 주인만 홀로 빈 찻집에 남게 될 것이다. 온종일 수평선만 바라보다가 지쳐 귀머거리가 되어버린, 그 바닷가 찻집에 파도처럼 왔다가 훌쩍 떠나버린 사람들이 어디 그들 뿐이였겠는가 주인은 마음으로 시집을 읽고 사내들은 말없이 빈 바다를 마신다 가득했던 내 찻잔도 서서히 식어갈 때 옛사랑에 대한 기억도 조금씩 잊혀져가고 내 손에 전해져오는 냉기와 콧속으로 파고드는 짭짤한 바다의 냄새, 내마음 역시 그들과 함께 빈바다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바닷가 빈 언덕에서 찻집을 하는 주인의 마음을 조금씩 알게 될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껴안을 수 없는 사랑 하나씩 안고 산다는 것을...

출처 : 어부림 ( 魚付林 )
글쓴이 : 거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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