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開 眼
開 眼 / 박목월 나이 60에 겨우 꽃을 꽃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렸다. 神이 지으신 오묘한 그것을 그것으로 볼 수 있는 흐리지 않은 눈 어설픈 나의 주관적인 감정으로 채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꽃 불꽃을 불꽃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렸다.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충만하고 풍부하다. 神이 지으신 있는 그것을 그대로 볼 수 있는 至福한 눈 이제 내가 무엇을 노래하랴. 神의 옆자리로 살며시 다가가 아름답습니다 감탄할 뿐 神이 빚은 술잔에 축배의 술을 따를 뿐. 젊은 나이에 老眼이 왔다. 시력을 탓하며 안경 신세를 지으려 안과에 들렸다가 의사 선생님의 의견에 따라 돋보기를 구입했다. 창을 열고 세상을 보아도 가림이 많아서 온전하게 사물을 다는 보지 못하는데 더더욱 눈에 유리창을 내걸었으니 제대로 보기가 쉽지가 않았다. 무거워지는 이마에 주름살이 걸쳐지기 전에 노인 행세를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십년 전에 이미 노인이 되어버렸다. 이 시를 읽으며 잔잔한 서러움이 일지만 안온하게 인생을 마감하는 노을녁에 선 한 인간의 지혜를 감지한다. 사실은 눈이 아니라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눈이란 마음의 창이기에 눈이든 마음이든 상관할 일이 아니다. 늙어가며 눈과 귀가 어두어 지는 신체적 변화에서 신의 섭리를 느낄 수 있다. 감사하고 창송할 일일 것이다. 어쩌면 늙는다는 것은 상실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모든 것에서 멀어진다고는 이야기하기 싫다. 마음이 열려 바로 볼 開眼의 축복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절제와 버림만이 이 세상에서 감사하며 살 수 있는 평화로운 삶이다. 돋보기를 서너번씩 바꾸고, 손에 닿은 곳에 두기 위해 너댓개를 준비하고 산다. 제대로 작은 것들을 들여다 보기 위해서는 돋보기부터 챙겨들어야 한다. 귀찮다면 한없이 성가신일이다. 그러나 세상이 쓸쓸하다고 불평하지 않을만큼 눈이 밝아졌다. 아름다운 세상이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 인생이다. 그렇다고 젊어지고 싶다거나 환생하여 다시 이 땅을 밟고 싶은 욕구도 없다. 한번으로 족하다는 생각이다. 이제 서럽지 않게 저녁 하늘에 번지는 노을을 바라볼 수 있다. 아름다웠다. 인생아.